문중소식
ㆍ작성자 관리자
ㆍ작성일 2020-09-01 (화)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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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분 류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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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수재(永綏齋) 중건기(重建記) 소개




 감무공(監務公) 묘소의 재실(齋室)인 영수재(永綏齋)는 본래 무술년(戊戌年)에 건립되었으나 관리가 소홀하여 목재가 습기에 썩고 벽체가 우중충해서 중수하는 일이 급했으나 종재(宗財)가 빈약하여 손을 놓고 있던 차 을미년(乙未年, 1955년) 대종손 종목(鍾穆), 도유사 종필(鍾弼)님 등 참례자들께서 10월 15일 도선묘 시제 후 재실 중수 건을 거론(擧論)하였다.

 이때 김제(金堤)에 거주하는 전북도의회 초대의장(初代議長, 1952.6.20.-1953.12.10.)과 1960년 무렵 전북대(全北大) 후원회장(後援會長)을 역임하신 취봉(翠峰) 종엽(鍾曄, 1909.12.10.-1982.5.22. 장수공파 집의공계 용자집) 종원(宗員)께서 가운(家運)이 영체(零替)되어 선묘 성묘를 자주 못하였으나 그 분 대에 이르러 약간의 축재한 것이 있으니 재실(齋室)을 개축(改築)하여 위선보본(爲先報本)의 성의를 보이겠다 하니 제족(諸族)이 모두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그 후 1956년 ~ 1958년 공사기간 중 그 분이 많은 돈(수억원 추정)을 투입, 변산의 목재와 황등의 돌을 사용하여 구재실(舊齋室)을 철거하고 30보(步) 정도 아래에 팔작지붕의 와가 연육가오간(連六架 五間)을 준공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이러한 업적과 같이 모든 종원은 숭조(崇祖)와 애족정신(愛族精神)이 투철한 고(故) 종엽(鍾曄)님에 대하여 감사를 표하고, 더욱 더 종중사에 뜨거운 성원과 협조를 기대하면서 영수재(永綏齋) 중건(重建) 전말(顚末)을 소개한다.

2020. 9. 1.

나 주 임 씨 대 종 중



<참고 자료>
길이 복록을 누리리라 기대한다는 의미(永綏 遐福)의 영수재(永綏齋)는,
나주시 문평면 옥당리 1구 금옥마을에 위치해 있으며,
나주 입향조(入鄕祖)이신 감무공 호 금은(錦隱) 휘 임탁(林卓) 공의 재실(齋室)입니다.

감무공 묘역에는 석순(石筍)이 서 있는데 후손들이 죽순 나듯이 번창한다고 구전되고 있어서 상서로운 증좌로 여기고 있습니다. 감무공 묘소 바로 아래에는 손자 산원공(11세, 散員公) 휘 시소(始巢)의 묘와 증손부 해미곽씨(12세 시정공 부인) 묘가 있어서 음력 10월15일에 3위(位)의 시제(時祭)를 함께 모시고 있습니다. 1995년 상석과 비석이 마모가 심하여 옛 것은 그대로 보존하면서 새로이 제작한 석물을 건립하여 세웠습니다.  

남도의 8대 명당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는 임을산(林乙山)은 이불을 덮은 산과 같다고 하여 ‘이불뫼’라고 불리우고, 마을은 구슬같이 맑다 하여 옥정이라고 하였는데 두 마을을 합하여 금옥이라고 부른다 합니다.

영수재는 1742년(이 연대는 영조 18년 임술년에 해당하며, “영수재(永綏齋) 중건기(重建記)”에서 말한 무술년은 1718년으로 경종(景宗) 즉위년에 해당하여 정확한 연대를 가늠하기 어려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면서 누차에 걸쳐 보수를 하다가 1957년 에 원 위치에서 30보 아래로 옮겨 재건축하였습니다.
기와를 이은 팔작지붕의 6가(架) 5간(間)으로 동서로 2방(房)에 중간은 대청으로 건축하였습니다.    

(정보위원 임양성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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