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중소식
ㆍ작성자 임웅섭
ㆍ작성일 2020-01-15 (수)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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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 제주양씨 할머니 정려각 내용
烈女 濟州梁氏 할머니 旌閭閣

《 梁氏 할머니와 습정공(習靜公) 임환(林懽) 》
烈女 濟州梁氏 할머니는 진사(進士) 양산룡(梁山龍)의 따님이시며, 송천 양응정(梁應鼎)의 손녀(孫女)로 나주임씨 16世 절도공 임진(林晉)의 4남인 습정공(習靜公) 임환(林懽)의 별실(別室)이셨다. 임진왜란(壬辰倭亂)때에 습정공(習靜公)은 출정(出征)하여 창의사(倡義使) 김천일(金千鎰) 장군(將軍)의 막하(幕下)에서 종사관(從事官)으로 활동(活動)하였으며, 진주성(晋州城) 전투(戰鬪)에 참여코자 출정(出征) 중 병환(病患)으로 환향(還鄕)하였다.
정유재란(丁酉再亂) 때에는 의병장(義兵長)으로 추대(推戴)되어 예교성 전투(戰鬪)에 참전하여 功을 세우고, 수 백石의 군량미(軍糧米)를 제공(提供)하는 등 큰 공(功)을 세워 선조(宣祖)로 부터 소의장(昭義將)의 칭호(稱號)를 받았고 전후(戰後)에 2등 공신(功臣)의 포상(褒賞)을 받으셨다.

《 梁氏 할머니의 犧牲과 羅州林氏 》
정유재란(丁酉再亂)이 일어난 정유년(1597년) 9월 하순에 회진(會津)의 林氏 일가(一家)들 모두가 불가피하게 배를 타고 피난(避亂)을 하게 되자, 회진(會津)나루에서 배를 출발하여 몽탄 어귀에 당도(當到)했을 때 뜻밖에 왜선(倭船)이 덤벼들어 위기(危機)를 헤아릴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 마침 적장(敵將)의 부모(父母) 기일(忌日)이 되어, 살육(殺戮)을 피하는 대신에 요구조건(要求條件)이 있다고 하면서, “사람은 죽이지 않을 것이니 너희 배에 실린 모든 재물(財物)은 모두 우리 배에 옮겨 싣고, 너희 배에 미인(美人) 한명을 뽑아 우리 배로 보내라”는 말을 하였다.
배에 타고 있던 전(全) 가족(家族)이 어찌할 바를 모르던 차에 烈女 濟州梁氏 할머니의 노비(奴婢)가 있어 단장(丹粧)을 시켜 적의 배에 올려 보내니 적장(敵將) 왈(曰) “아니다. 다른 미인(美人)을 보내라”하니 烈女 濟州梁氏 할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며 말하기를 “모든 부인(婦人)들은 정절(貞節)을 중(重)히 여겨 욕(辱)을 받을 수 없다”하면서, 오늘의 일은 자기 홀로 감당할 것을 청하고 드디어 채복(綵服)을 입고 적의 배에 오르니 적장(敵將)이 크게 기뻐하고 즉시 우리 배를 놓아주었다.

양쪽 배의 거리가 멀어지자 烈女 濟州梁氏 할머니가 적장(敵將)에게 “내가 처음으로 가족(家族)들과 이별(離別)을 하니 정서(情緖)가 창망(悵惘)하여 뱃머리에 나가보고 싶다”고 하니 허락을 하여 밖으로 나와 가족(家族)들이 탄 배를 향하여 큰 목소리로 울부짖으며 몸을 솟구쳐 바다 물속으로 뛰어 들었는데 우리 배에서도 홍상(紅裳)이 펄럭이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당시 9歲 소년(少年)인 한호공(閑湖公) 임연(林堜 : 習靜公의 堂姪)이 그 배에 타고 있어 당시의 정황(情況)을 자세히 일기(日記)에 기록(記錄) 하였었다.
이날 밤에 습정공(習靜公)은 순천 예교의 진중(陣中)에 있었는데 烈女 濟州梁氏 할머니가 현몽(現夢)하여 “저는 아무 곳에서 적(敵)을 조우(遭遇)하였으나 몸을 물에 던져 욕(辱)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라고 말하였다. 습정공(習靜公)은 놀라 꿈에서 일어나서 처연(悽然)한 심경(心境)을 시(詩)로 표현(表現) 하였다.(習靜公 유고집 ‘몽견양랑자’)

전쟁(戰爭)이 끝나고 나서 고향(故鄕)으로 돌아왔을 때 한호공(閑湖公) 임연(林堜)과 그날의 기록(記錄)을 대조(對照) 해보니 모두 부합(附合)되었다. 참으로 기이(奇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나주임씨(羅州林氏)는 烈女 濟州梁氏 할머니의 희생(犧牲)으로 멸문(滅門)의 화(禍)를 면(免)하고 그 일가가 생존(生存)하여 현재의 번성(繁盛)을 누리게 되었다.

《 旌閭閣 설치(設置)‧이설(移設)과 중수(重修) 내력 》
1. 습정공(習靜公)께서 1598년 가을 정유재란(丁酉再亂)이 끝나자 고향(故鄕) 회진(會津)으로 오셨다가 잠시 머무른 후 아들 월창공(月窓公 임게)이 살고 있는 영암군(靈岩郡) 삼호읍(三湖邑) 용당리(龍塘里) 덕호(德湖) 마을에 가 살면서 庚子年(1600년)에 公이 조정(朝廷)에 장계(狀啓)하여 정려각(旌閭閣)을 세우셨다.
35년이 경과(經過) 후 전라도(全羅道) 생원(生員) 홍탁(洪탁) 등이 조정(朝廷)에 상소(上疏)하여 인조(仁祖) 13년(1635년) 3월 10일에 공식 승인되었다. 정려각(旌閭閣) 건립 이후 141년의 세월(歲月)이 경과(經過) 한 후 1741년 신유태풍(辛酉颱風)의 피해로 정려각(旌閭閣)이 도괴(倒壞)되고 현판(懸板)도 소실(消失)되었다.

2. 그 후 羅州林氏의 성지(聖地)인 신걸산 소재 습정공(習靜公)의 묘소(墓所) 아래로 이축(移築)을 하였으나, 長久한 세월(歲月)이 흐르고, 관리가 소홀하였는지 초라한 형상(形狀)이 되었었다.

3. 동리공(東里公 林휘 : 習靜公의 堂姪) 후손(後孫)인 임채규(林采圭)가 한평생 열녀각(烈女閣) 때문에 많은 걱정을 해오다가, 장남(長男)을 불러놓고 “우리가 이만큼 사는 것도 모두 烈女 濟州梁氏 할머니의 덕(德)인데 유적(遺蹟)이 민멸(泯滅)하게 됨은 나의 한(限)이 된 바이니 내가 죽은 後에라도 아비의 뜻하는 바를 잊지 말라” 하였다.
그 후 아들 임종기(林鍾基)가 선친(先親)의 유지(遺志)를 저버릴까 걱정을 한 뒤 사재(私財)를 털어 烈女 濟州梁氏 할머니의 정려각(旌閭閣) 중수(重修)를 착수(着手)하니, 전 종중(宗中)이 그 말을 듣고 우리 종원(宗員) 어느 누구도 濟州梁氏 할머니 은덕(恩德)을 입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서 적극(積極) 호응(呼應)하였다.

그해 1966년 대종중(大宗中) 도유사(都有司) 임종린(林鍾麟)을 주축(主軸)으로 전 종원(宗員)들이 금전(金錢)을 모아 단(壇)을 설치(設置)하고 전답(田畓)을 구득(求得)한 후 동리공(東里公) 문중 임광행(林廣幸)이 비(碑)를 건립(建立)하여 그해 음력(陰歷) 10월 25일부터 습정공(習靜公) 임환(林懽)의 시제(時祭)날에 제사(祭祀)를 모셔오고 있다.

4. 烈女 濟州梁氏 정려각(旌閭閣) 제답(祭畓) 위토(位土)는 田 425坪과 畓420坪을 1966년에 취득(取得)하였으나 소유권(所有權) 이전(移轉)이 미(未) 실행상태(實行狀態)로 있기에 후손(後孫) 임정길(林政吉)이 ‘부동산등기특별조치법(不動産登記特別措置法)’ 기간에 당시 대종중(大宗中) 총무유사(總務有司)인 임동렬(林東烈)과 협의하여 습정공 문중(習靜公 門中) 명의(名義)로 이전(移轉)을 완료(完了)하게 되었다.

5. 2000년 봄 습정공(習靜公) 후손(後孫) 임정길(林政吉)이 정려각(旌閭閣)의 상량(上樑)이 부러지고 지붕이 뒤집혀 도괴(倒壞)된 상태(狀態)임을 발견(發見)하고 습정공(習靜公)의 큰 아들인 월창공(月窓公) 문중의 임원(任員)들이 열녀각(烈女閣)의 복구계획(復舊計劃)을 수립(樹立)하고 2개월(個月)여 동안 합심(合心) 협력(協力)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再建)하여 2000년 6월11일에 대종중(大宗中. 都有司 林權澤)의 협조(協助)로 烈女 濟州梁氏 할머니 친정(親庭)집안 후손(後孫)들도 함께 초대(招待)하여 준공식(竣工式)을 거행(擧行)하였으며, 차후(此後)에는 관리(管理)에 철저를 기하여야 할 것입니다.

6. 2013년11월11일 강계공(江界公 : 習靜公 仲兄) 후손(後孫)인 종원(宗員) 임경렬(林敬烈)의 지대(至大)한 노력(努力)으로 나주시지방문화재(羅州市地方文化財) 제36호로 지정(指定)되었습니다.

《 向後 計劃 및 對策 》
현재(現在)는 후손(後孫)인 17世 습정공(習靜公), 18세 월창공(月窓公) 문중(門中)에서 유지보수(維持補修)와 시제(時祭)를 주관(主管)하여 모시고 있으나, 이는 烈女 濟州梁氏 할머니의 은공(恩功)에 대한 예우(禮遇)에 합당(合當)하지 못하다는 생각으로 向後에 제례(祭禮)를 대종중(大宗中)에서 주관(主管)하는 방향(方向)으로 협의(協議) 중입니다.

2020년 1월 일
습정공(習靜公) 11代孫 임정길(林政吉)기록
《 참고 문헌 》
◦ 나주임씨 세승(양씨유사)
◦ 승정원 일기
◦ 제주양씨 삼강정
◦ 의병열전
◦ 예교진 병일록
◦ 이충무공 난중일기

《 筆者 임정길(林政吉) 略歷 》
羅州林氏 大宗中 評議會 (前) 議長
羅州林氏 大宗中 元老會 (前) 議長
羅州林氏 大宗中 (前) 都有司


※ 旌閭閣 位置
◦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가운리 159-2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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