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 歸來亭 휘(諱) 임붕(林鵬) 할아버지의의 글씨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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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래정공께서는,
휘 임붕(林鵬, 1486~1553)으로 자(字) 충거(沖擧), 호(號)로 귀래정공, 승지공, 부윤공으로 호칭되었으며,

일찍이 (성균관) 생원(生員) 시절 성균관 유생들을 대동하고 궐문 밖에서 기묘명현(己卯名賢) 조정암(趙靜庵)을 소구(訴救)하셨던 분이셨습니다.

공께서는 나림 문중에서 최초로 문과에 입격하신 분입니다.  
중종 때 별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경직(京職) 한원옥서(翰苑玉署)를 역임한 뒤 좌승지(左承旨), 예조 및 병조 좌랑과 이조참의(吏曹參議) 등 5조참의를 역임하신 후,
경주 부윤를 거쳐 광주(光州) 목사 재임 중 작고하신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문학과 덕망으로 세상에 이름이 높았다고 합니다.

공은 나주 임씨의 중시조(현조)로 불리는데, 사후에 병조참판을 추증받았습니다.

공께서는 ‘조종(祖宗)의 공을 빛내고 가업을 후예들에게 내려준다’는 내용의 유훈을 남겨 효와 충을 근본으로 삼도록 했습니다.

우리 林門에는 회진 대종가에 부조묘 사당이 있는데,
공의 발의에 의해서 참판공(14세 휘 枰)과 배위(配位) 언양김씨(彦陽金氏)를 모시고 있습니다.

공께서 "공(公, 휘 枰)은 우리 가문으로 보면 공(功)이 조종(朝宗)을 빛내고, 업(業)이 후손에 드리웠으니 마땅히 영세불천(永世不遷)의 주(主)로 삼아서 그 거룩한 업적을 길이 잊지 말도록 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고 장묘우문(藏廟宇文, 사당에 보관한 글)을 지어 유훈으로 남기셨습니다.

이후로 자손들이 유훈을 지켜서 오늘에 이르도록 참판공의 기일(忌日)인 음력 12월 5일과,
배위(配位) 언양김씨(彦陽金氏)의 기일인 음력 1월 12일에 부조묘에 모여 제사를 성대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장묘우문이 작성된 연대는 명종 8년(1553)이고. 명종 20년(1565)에 사당을 건립했으며, 효종 5년(1654)에 중수했습니다.
그후, 1986년 지금의 규모로 확장 중건하였습니다.

귀래정은 영모정을 가리키며,
전남 나주시 다시면 회진리 90번지에 위치한 우리 임문의 대표적인 정자로, 현재 지방기념물 11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초기에 휘 붕(鵬)의 호를 따서 ‘귀래정’이라 불렀는데,
명종 10년(1555년)  정자공 휘 임복과 절도공 휘 임진이 아버지를 추모하기 위해 재건하면서 ‘영모정’(永慕亭)이라 이름을 바꾸었다고 합니다.(영모는 ‘어버이를 길이(永) 추모한다(慕)’는 의미)

정보관리위원 임양성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