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소(화보)

10世 소윤공 휘(諱)봉(鳳) 묘소
 
 

 

            ⊙10世 소윤공(少尹公) 휘(諱)봉(鳳) 묘소⊙
 

奉善大夫軍器少尹(봉선대부군기소윤)

羅州林公諱鳳之墓(나주임공휘봉지묘)



 
ㅡ 전남 나주시 다시면 가운리 신걸산 복암사伏岩寺)左 아래 능선 ㅡ


♣관(官) : 봉선대부奉善大夫). 군기소윤(奉善大夫 軍器少尹:從4品).
..목은 이색(李穡), 포은 정몽주(鄭夢周)
♣실(室) : ?
♣묘소(墓所) : 전남 나주시 다시면 가운리 신걸산 복암사 아래 능선
♣배향(配享) : 고려통일대전(高麗統一大殿)」충신각.
♣제실(祭閣) : 영성각(永成閣)ㅡ나주시 다시면 가운리 신걸산 세장산 앞
♣시제일(時祭日) : 음력 10월 16일 시향(時享)
☎연락처 :  (대종중도유사 061 : ㅡ.

 임채하(홈피관리자) 010ㅡ3609ㅡ6122, 임점택(다음카페운영자) 010ㅡ2869ㅡ5209

♣ 소윤공(少尹公) 휘봉(鳳) 사적(史蹟) ♣

나주인(羅州人)으로 소윤(少尹)은 탁(卓)의 아들이고 호군(護軍) 선(宣)의 손자이며

 불훤재 문정공(文貞公) 신현(申賢)의 문하생이다.
여말에 벼슬이 군기시소윤(軍器寺少尹 : 종四품)이다. 일찍이 목은 이색(李穡),

포은 정몽주(鄭夢周), 김제(金濟), 김혁(金革), 이석(李碩), 최원개(崔元凱), 신덕린
(申德隣), 김주(金澍), 탁신(卓愼), 구영검(具榮儉), 김중방(金仲滂), 송인(宋寅)등
신자문인(申子文人)들도 더불어 학문을 논하고 교유(交遊)하였다.《華海師全》

드디어 고려가 망하고 조선조가 건국됨에 찬역(簒逆)의 무리와 하늘을 함께 일

(대(戴)) 수 없어 부친을 뫼시고 아들 시소(始巢)와 유소(有巢)를 데리고 성향
(姓鄕)인 나주 회진(會津)으로 돌아가 그 절의(節義)를 온정히 하였다.《世譜》

아들 시소(始巢)는 일찍이 정포은(鄭圃隱)을 좇아 학문을 수학, 경사(經史)에

 박통(博通)하였다.「화해사전(華海師全)」에는 정포은선생과 옛 성인 요(堯)·
순(舜)·우(禹)의 심법(心法)에 대한 문답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여말에 벼슬이 서반(西班)의 보승산원(保勝散員 : 정八품)이었으나 《世譜》

고려의 운이 다함에 미쳐 스승 정포은이 혁명역도에게 참화를 당하고 마침내
조선조가 건국되자 조부와 부친으로 더불어 자취를 감추고 나오지 않았다.
------------------------------------------------------------------------

 9世 감무공 탁(卓)
ㅣ★
10世 소윤공 봉(鳳)

11世 산원공 시소(始巢)ㅡ도정공 유소(有巢)ㅡ주서공 수소(遂巢)

12世 시정공 석주(碩柱)

13世 참의공 귀연(貴椽)ㅡ진사공 귀량(貴樑)

14世 참판공(參判公) 평(枰)

15世 귀래정공 붕(鵬)ㅡ생원공 학(鶴)ㅡ동지공 안(鷃)
(歸來亭公) (生員公) (同知公)

16世 장수공 익(益)ㅡ정자공 복(復)ㅡ절도공 진(晉)ㅡ첨지공 몽(蒙)
(長水公) (正字公) (節度公) (僉知公)

-------------------------

전자족보 P.118~119 / 甲戌大同譜 P.253~255

-----------------------

公諱鳳官奉善大夫軍器監少尹

(공의 휘(諱)는 봉(鳳)이요, 관(官)은 군기감(軍器監) 소윤(少尹)이다)


 

(1)墓碑銘 幷書 陰記付 後孫 校理 象德 謹識

(묘비명) 병서로 음각하여 기록할 것을 부탁하고 후손 교리(校理) 상덕(象德)이 삼가 쓰다.

 

嗚呼, 此羅州林氏之祖奉善大夫軍器監少尹諱鳳之墓洞曰伏巖岡之

坐向曰卯酉

아! 감탄하노니 우리 나주임씨의 선조로 봉선대부(奉善大夫) 군기감(軍器監) 소윤(少尹)이신

휘(諱) 봉(鳳)의 묘 있는 골을 말하기를

복암산 언덕에 좌향(坐向)을 일컬어 묘좌() 유향(酉向)이로다

 

始子孫失其兆, 州人有葬其父者卜山 龜食公之墓側掘之得焉掊

秘之事泄誌已不可識而

처음에 자손들이 그 묘소를 망실하였는데, 그곳(羅州)에서 어느 사람이 자기 아버지를 매장한

복산(卜山) 귀식(龜食)이 임공(林公)의 묘소 측근이라 하여

무덤을 파서 지석(誌石)을 찾아 파헤쳐보니, 지석(誌石)의 내용이 희미하여 알아 볼 수가 없고,

 

獨其官諱僅傳子孫遂改封土自是歲一香火而,

단지 그 관직과 이름을 겨우 전래하여 자손들이 비로소 봉축(封築)을 개축하고 그때부터

일년에 한 번씩 향불을 올렸으나

 

其夫人姓氏及祔或不祔皆不詳焉

그 부인의 성씨와 합장(合葬)인지 아닌지를 모두 자세하게 알 수가 없다。

 

林氏譜以高麗大將軍都指揮使庇爲始祖傳

임씨족보가 고려때 대장군 도지휘사이신 비(庇)公을 시조(始祖)로 하여 전해오기를

 

直長同正永拔 吏部尙書良幹 護軍朴 中郞將永文

작장동정(直長同正) 영발(永拔 2世), 이부상서(吏部尙書) 양간(良幹 3世),호군(護軍) 박(朴 4世),

중랑장(中郞將) 영문(永文 5世),

 

別將敦世 版圖判書秀 護軍宣 監務卓至公爲十世計公之誌,

별장(別將) 돈세(敦世 6世), 판도판서(版圖判書) 수(秀 7世), 호군(護軍) 선(宣 8世),

감무(監務) 탁(卓 9世)으로 공(公)에 이르므로

공은 10世로 기록한다。

 

大將軍以上必有可徵而旣幸而,得之,又毁滅不傳可恨也。

대장군 이상에도 반드시 증빙서가 있으므로 다행이나 또 훼손(毁損), 파멸(破滅)되어 전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다

 

譜云監務公當太祖龍興之日棄官歸鄕里仍居焉

족보에 기록하기를 감무공이 이태조 임금 되는 날에 벼슬을 버리고 향리(鄕里)로 돌아와서 그대로 머물러 살았다고 한다

 

公亦高麗官自公以下三世處而不仕則意公父子俱以前朝世臣値世革命

소윤공께서도 역시 고려의 관직이고 공으로부터 아래로 3世가 그곳에서 살며 벼슬을 아니하였다고 한 즉 공의 부자(父子)

모두 세상의 혁명을 만나

 

抱西山之志終身隴畝而 子孫亦不復求聞于世者歟

서산(首陽山)의 충절(忠節) 뜻을 품고 종신(終身)토록 시골에 계셨고, 자손 또한 세상에 들리는 것을 다시 구직하지 아니 하셨다

 

然高麗之亡距今三百有若干年公私無文獻其事不可質言於是誌之不傳益可恨也。

그러나 고려의 패망한지 이제 300년이 약간 지냈는데 공사간 문헌이 없으니, 그 사적을 가히 딱 잘라 말 할 수 없어 이에 기록의

전래되지 못함이 더욱 가히 한스럽다

然林氏在麗朝十世皆顯 麗亡晦而不顯者百年而,

그러나 우리 임씨가 고려 조정(朝廷)에서 10世 모두 현달(顯達)하더니, 고려가 망함에 이름을 감추고

현달치 못한지 100년이 이러니

 

又復顯迄于今不絶即其顯晦之際公父子之始終可以隱約而,

또 다시 현달한 자가 지금에 이르러 끊어지지 않아서 밝고 어두움에 즈음하여 그 공의 부자(父子)가

시종(始終)토록 가히 세상에 묻히어

괴로움을 참어시니,

 

古人所謂天道百年而後定者詎不然歟

옛사람들의 이르는바 천도(天道)가 100년 후에 안정함이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公之後曰 始巢碩柱貴椽此向所謂三世不仕者也。

공의 후손을 일컬어 시소(始巢 11世), 석주(碩柱 12世), 귀연(貴椽 13世) 이들이 소위 3世가 벼슬에 나가지 아니한 분이시다

 

貴椽生枰以武爲兵馬虞候

귀연(貴椽)께서 평(枰)을 낳으시니 무과(武科)로 병마우후(兵馬虞候)요,

 

枰生鵬登文科歷翰院玉署銀臺卒官慶州府尹

평(枰)께서 붕(鵬)을 낳으시니 문과(文科)로 한림원(翰林院)과 옥서(玉署) 은대(銀臺)를 거쳐, 마침내 경주(慶州) 부윤(府尹)을

역임하셨음으로

 

以故得推恩虞侯, 贈兵曹參判, 貴椽贈戶曹參議, 碩柱贈軍器寺正,

추은(推恩)을 얻어 우후로, 병조참판을 증직 받으셨고, 귀연(貴椽)도 호조 참의를 증직이요, 석주(碩柱)도 군기 시정(寺正)을

증직 받으셨고,

 

承旨之子益陰長水縣監,

승지(承旨) 붕(鵬)의 아들 익(益)은 음덕(陰德)으로 장수(長水) 현감(縣監)이 되시고,

 

復文科承文院正字贈兵曹判書,

복(復)은 문과(文科)로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 정자(正字) 역임후 병조판서(兵曹判書)의 증직(贈職)을 받으시고,

 

晋武科兵馬節度使,

진(晋)은 무과(武科)로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가 되시니,

 

林氏於是派爲三宗而內外子孫千百不可悉記矣。

임씨가 이에 분파되어 3종(三宗)이 되고, 내외 자손이 너무 많아 모두 다 기록하지 못하나

 

於虖盛哉今錄其宗派及支裔之有名德官職者附刻于碑陰銘曰,

아, 참 번성한지라, 이제 그 종파와 지예(支裔)에 이름나고 덕 있는 관직이 있는 자를 기록하여 그 묘비(墓碑)에 새기고

명(銘)을 말하되,

 

運世改陵谷變子孫在載晦顯其跡泯其理貞曷其信。視此銘

운세의 릉(陵)이 개역(改易)하여 곡(谷)으로 변함과 자손들의 세상에 감춤과 나타남이 그 자치의 민몰(泯沒)함과 그

성품의 정민(貞珉)함을

어찌 믿지 아니하리요 이 기록을 잘 보라




(여기부터 한글자 안으로 들여 씀 : 편집자 註)

 
[도선묘] 9世 감무공(號 錦隱) 휘(諱) 탁(卓)묘소
[도선묘] 9世 감무공 휘(諱) 탁(卓) 묘역
[도선묘 묘역 전경] 맨위부터 9世 감무공-11世 산원공-12世 시정..
10世 소윤공 휘(諱)봉(鳳) 묘소
16世 장수공 휘(諱) 익(益) 묘소ㅡ나주시 다시면 가운리 신걸산
17世 대종손 감역공 휘 개(愷) 묘소ㅡ나주시 다시면 가운리 신걸..
17世 참의공 휘 경(憬) 묘소ㅡ전남 무안군 청계면 목포대학 뒤
17世 감역공 휘(諱) 황(惶) 묘소ㅡ전남 나주시 다시면 가운리 신..
17世 집의공 휘(諱) 척(惕) 묘소ㅡ광주시 광산구 삼도동 오운리 ..
17世 후정공 휘(諱) 각(恪) 묘소ㅡ전남 함평군 학교면 고막리 대..
17세 주서공 휘 열 묘소 전남 함평군 신광면 송사리
18세 대종손 좌랑공 휘 성 묘소 전남 나주시 다시면 가운리 신걸..
16世 정자공 휘(諱) 복(復) 묘소ㅡ나주시 다시면 가운리 신걸산
16世 절도공 휘 진(晉) 묘소ㅡ나주시 다시면 가운리 신걸산 ㅡ
12세 교수공 휘 상재 묘소ㅡ경남 함양군 유림면 화촌리ㅡ
18세 휘 훈 묘소 ㅡ 전남 나주시 다시면 가운리 신걸산
123456789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