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화보)

⊙ 창계서원(滄溪書院) ⊙

ㅡ 나주시 다시면 가운리 141-2번지 ㅡ

 

창계공(滄溪公) 임영(林泳 :1649~1696)선생을 모신 서원

 
임영(林泳)의 자(字)는 덕함(德涵)이요, 본관은 나주이시고, 창계는 그의 호이다. 일찍이 문과에 급제, 벼슬은 부제학, 대사헌에 이르렀으나, 일생을 학문 연구에 힘써 큰 업적을 남기신 호남이 배출한 빼어난 학자이기에 훌륭한 스승으로 길이 추모하고 사표로 삼기 위해 서원을 건립한 것이다. 창계서원은 숙종 37년(1711), 회진 마을에 세워졌던 바 영조 43년(1767) 무렵 중건을 하면서 이곳 신걸산 아래로 옮겨지게 되었다.
19세기 말 전국적으로 단행했던 서원 철폐로 이 서원 역시 훼철(毁撤)을 당하고 말았는데 후일 그 터에 영성각(永成閣)이 세워졌다. 근래 민족 문화유산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창계서원을 복원해야 한다는 생각이 힘을 얻어 본 서원은 다시 복원되기에 이르렀다.
원래의 위치에 선생의 위패를 모신 창계사(滄溪祠)와 건순문(建順門)이 경향의 뜻있는 인사들과 문중의 협찬을 받아 2003년 3월 중건된 것이다. 기존의 건물인 영성각은 서원의 강당으로 함게 쓰이고 있다.


매계공(梅溪公) 영당(影堂) : 매계공의 영정(影幀)을 모신 집

매계공 임정(林淨 : 1654~1710)은 창계공의 아우로 남원부사를 거쳐 강화유수를 지낸 인물이다. 초상화는 공의 재세시(在世時) 전문화가에 의해 제작된 작품으로 영당은 창계서원이 이곳에 중건(重建 1767년)되면서 경내에 함께 세워졌고 매년 중구일(重九日)에 진영(眞影)을 위한 제사를 드리고 있다.

ㅡ 서기 2001년 1월

※창계공 임영(林泳)은 이단상(李端相) 박세채(朴世采)의 문인. 1665년 17세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1671년 정시을과(庭試乙科)에 급제한 후 사가독서(賜暇讀書)했다. 그 후 이조정랑(吏曹正郞) 대사헌(大司憲)등을 역임하고, 1694년 대사간(大司諫)개성부유수(開城府留守)를 거처 이듬해 부제학(副提學)이 되었으나, 병으로 눕게 되어 약물(藥物)을 하사 받았고 참판(參判)에 이르렀다.

경사(經史)에 정통하고 문장이 뛰어났으며 송시열(宋時烈), 송준길(宋浚吉)에게도 수학한 기호학파(畿湖學派)의 학자였으나 이기설(理氣說)에 있어는 이이(李珥)의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에는 찬성하고 기발이승설(氣發理乘說)에는 반대하였다. 나주에 창계서원(滄溪書院) 함평의 수산사(水山祠)에 배향(配享)되였다. 창계집14권 등 많은 작품이 전해오고 있다.

▼ 창계서원 제향 사진 모음 ▼
 
        ▲헌관서립모습.
창계서원제향(나주임씨 20세 휘(휘) 영(창계공)을 모신 서원이며
매년 음력 9월9일이 제향일이다. 

 
       ▲제사 모습
,
 
       ▲제물(제물은 일반 가정제사와는 다름),


 
 
 
 ▼ 매계공(梅溪公) 임정(林淨)의 영정(影幀) ▼  (창계공의 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