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화보)


 

⊙ 물곡사(勿哭辭) 비(碑) ⊙

17世 백호공 휘 제(悌)의 임종시 말씀
ㅡ 전남 나주시 다시면 회진리 영모정 앞 ㅡ 


 
⊙ 물곡사(勿哭辭) 비(碑) ⊙

17世 백호공 휘 제(悌)의 임종시 말씀
ㅡ 전남 나주시 다시면 회진리 영모정 앞 ㅡ


백호공 임제(林悌)의 자는 자순(子順). 호 백호(白湖), 겸재(謙齋) ,풍강(楓江), 소치(嘯痴)이다. 1576년 생원 진사 양시에 합격하고 1577년에 알성을 과(謁聖乙科)에 급제하여 예조정랑(禮曹正 朗)겸 지제교(知製敎))를 지내다가 동서양당 의 싸움을 개탄하고 명산을 찾아다니면서 여생을 마쳤다. 당대의 명문장가로 이름이 날렸고 호방쾌활(豪放快活)한 시풍(詩風)으로 작품이 널리 애송되었다.
저서로는 화사(花史) 수성지(愁城志) 백호집(白湖集) 원생몽유록(元生夢遊錄) 남명소승(南溟小乘) 부벽루상영록(浮碧樓觴詠錄) 용성수창집(龍城酬唱集)등이 있다.


白湖林悌 臨終 誡子 勿哭辭*
(백호임제 임종 계자 물곡사)


 

四海諸國未有不稱帝者獨我邦 終古不能
(사해제국미유불칭제자독아방종고불능
)


 

生於若此陋邦其死何足惜 命勿哭
(생어약차누방기사하족석 명물곡)


 

*원문 출전(出典)은 성호 이익 선생의《성호사설(星湖僿說)≫人事門 선희해조(善戱謔條)에서 인용.

(풀이)
백호공 임제 선생께서 임종하실 때 아들들과 조카들에게 곡을 하지 말라고 훈계하시는 말씀을 하셨다.

"사해의 여러 나라들이 황제를 일컬어 보지 않은 나라 없거늘 우리나라만 예로부터 그래보지 못했다. 이와 같은 나라에 태어났거늘 그 죽는 것을 어찌 애석해할 것 있느냐 곡을 하자말라."고 유언하셨다.

이이, 양사언, 허봉, 차천로 등과 함께 시회.동서(東西) 붕당(朋黨)의 분쟁(紛爭)을 개탄하고 벼슬을 버리고 산천(山川)을 주유(周遊)함/ “若使吾値五代六朝면 亦當爲輪遞天子하리라”[만약 나로 하여금 오대나 육조와 같은 시대를 만나게 했다면 또한 마땅히 윤체천자(輪遞天子:돌림천자)가 되리라]

호방함과 비판정신, 자주정신,주체사상에서 나온 말로써 가히 오늘날 우리가 본받을 만한 교훈이다. 이러한 문학적 세계관과 지사(志士)정신을 바탕으로한 “물곡사(勿哭辭)”유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