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화보)

⊙ 화산서원(華山書院) ⊙
ㅡ 경남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 ㅡ 


 
 

⊙ 화산서원(華山書院) ⊙
ㅡ 경남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 ㅡ

①14世 회헌공(晦軒公) 휘(諱) 대동 (大仝),
②15世 한림공(翰林公) 휘(諱) 종인(宗仁),
③17世 남계공(濫溪公) 휘(諱) 희무(希茂) 세분을 모신 서원.


화산서원은 심원문(尋源門), 화산서원(華山書院), 경회당(景晦堂), 모의재(慕義齋), 탁청헌(濯淸軒), 상현사(尙賢祠)로 구성되었다. 상현사에 14世 회헌공 휘(諱) 대동(大仝), 15세 한림공 휘(諱) 종인(宗仁), 17세 남계공 휘(諱) 희무(希戊) 세분을 배향한 서원이다.

①회헌공(晦軒公) 휘(諱) 대동(大仝)은 1432년(세종14)에 태어났으며, 자는 정숙,(貞叔),호는 회헌(晦軒)이시다. 어려서 효성스러웠으며 학문에만 뜻을 두었고, 점필재 김종직이 함양군수로 부임해오자 그의 문하생이 되어 정여창, 김일손, 조매계 등과 교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벼슬에는 뜻을 두지 않고 홀로 향리에 머물면서 학문에 정진하였다. 나이 42세(1474년 성종5)에 겨우 사마시(司馬試)를 보아 합격하였고 임실 현감을 지내며 선정을 베푸신 뒤에 번잡하고 중상모략이 판을 치는 조종에 나가기보다는 학문으로써 도를 알고 그것을 따르려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다.
그는 또한 재주 있는 젊은 문사들을 모아 후학을 양성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젊어 학문에 힘써고 벗을 두어 시를 읊으며, 풍류를 즐기고 늙어 젊고 유능한 후학을 키우는 일이 선비의 제일의 삶이라 한 것처럼 깨끗하고 소박한 삶을 사신 분이시다.

②함께 배향되어 있는 15世 한림공(翰林公) 휘(諱) 종인(宗仁)은 1468년(세조14)에 태어났으며, 자는 미원(美源), 호는 회암(會巖)이시며, 1488년(성종19)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학사 승문원 정자를 역임 하신 후, 연산군 때 벼슬을 버리고 향리인 산청군 모고리로 낙향하셨다. ‘귀전원시’,‘자경시’가 세전되고 있다.

③17世 남계공(濫溪公) 휘(諱) 희무(希茂)는 자는 언실(彦實)이요, 호는 남계(藍溪)이시다. 1527년(중종22)에 도정공의 7세손으로 태어났으며, 남명 조식선생의 문하생이며,오건, 배신침, 노전 등과 교의가 깊었다. 1552년(명종7) 강익, 정복현 등과 함께 함양에 정여창을 배향한 남계서원을 창건하였다. 1588년(명종13) 32세에 문과별시 병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정자,성균관 학유, 사헌부 지평, 사간원 정언, 좌승지, 우승지와 순창, 금산, 밀양, 울산, 능주 등의 군수를 지내셨다.
향사(享祀)일은 음력 2월 中丁일이다. 

▼ 화산서원(華山書院) ▼ (2016년 중건 모습)
              (   준비중 )

 

 

 

  

▼ 화산서원 모의재(慕義齋)▼

 
좌우에 경회당(景晦堂),탁청헌(濯淸軒)이 있고 뒷편에
위패를 봉안한 상현사가 있다


 

 


 

▼ 화산서원기 ▼
 

 ▼ 화산서원 중건기▼

 


▼ 화산서원 상현사(尙賢祠)

 
 

 

화산서원 상현사(尙賢祠) 내삼문 벽화 ▼

   ( 준비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