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화보)

 ⊙ 식 영 정(息營亭) ⊙
* 18世 한호공(閒好公) 휘(諱) 연(堜)이 지은 정자 *
ㅡ 전남 무안군 몽탄면 이산리(배뫼마을) ㅡ
 

⊙ 식 영 정(息營亭) ⊙
* 18世 한호공(閒好公) 휘(諱) 연(堜)이 지은 정자 *
ㅡ 전남 무안군 몽탄면 이산리(배뫼마을) ㅡ


*자(字) 동야(東野). 호(號) 한호(閒好). 1589(선조 己丑)7. 26 生 ~ 戊子 10. 11 卒.
*관(官) 1610(광해군 更戌) 진사. 1613(癸丑) 증광문과(增廣文科). 우승지(右承旨).
*묘(墓) 나주시 다시면 가장동 신걸산
*실(室) 숙부인(淑夫人) 남양 홍씨

▼ 식 영 정(息營亭)▼
몽탄면 이산리 배뫼마을에 있는 식영정(息營亭)은 무안군 몽탄면 소재지에서 동편으로 약 2㎞ 떨어진 영산강변에 위치하고 있는 식영정(息營亭)의 유래에 대하여 말씀드립니다.
임연(林)의 자늠 동야(東野)이며 호는 한호(閒好)이시며, 본관은 나주이시고 황해도 관찰사를 역임하신 임서(林)의 장남으로 서기 1589년 7월 26일에 나주군 다시면 회진리에 태어나 1610년(광해군 2년) 성균관 진사가 되었고, 이로부터 3년 후인 1613년 증광문과에 합격하여 영암군수, 진주목사, 원주판관 및 좌우승지, 남원부사를 역임하시다가 관직에 몸담고 있는 것은 마치 새장 속에 갇힌 새와 어찌 다르랴 생각하시어 오직 산수를 찾아 한인(閑人)이 되어 여생을 보내는 것이 한이 되어 말년에 관직을 버리고 영산강을 선유하면서 좌우 산세와 흐르는 강물의 조화를 이룬 영산강 서쪽 용금봉 아래 조그마한 별서(別墅)를 지어 당호는 만휴당이라 하고 수년 동안 왕래했으나 지형이 그윽하지 못하고 즐길만한 곳이 못되어서 영산강 연안을 따라 상하를 두루 심토(深討)하시다가 1630년 가을에 드디어 사포와 몽탄 사이에 오묘한 곳을 찾았으니 자리는 그윽하여 기운이 머물렀고 물맛이 좋고 땅은 비옥하여 가히 선비가 살만한 곳임을 깨닫고

앞에는 대강(大江)에 임해 있어 왕래가 편리하고 층층바위 산봉우리들이 물가에 나열해 있어 정대(亭坮) 짓기에 적합하여 하늘은 의심하는 자에게는 인색(吝嗇)하고 기다리는 자에게는 길지(吉地)를 준다하지 않았던가 금성산 정기받은 승달산이 들어갔다가 가렸다가 서해를 향하여 오륙십리 나아가 장강(長江) 쪽으로 한맥이 갈라져 나온 산골마을이다.
주용(朱龍)은 협문이요, 동주는 은적(銀積)이며, 월출산 지하요 승달산 산줄기들이 연하여 있어 나주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영산강 중류요 무안군 몽탄면 이산리 배뫼마을이다. 용호(龍虎)가 뛰어 달리듯 꿈틀거리고 십리쯤 가다가 한 봉우리가 강심으로 들어갔으니 이를 비래봉(飛來峰)이라고 하고, 뾰족뾰족한 돌들은 마치 처사들이 살고 있는 듯 느꼈다. 삼면은 막혀 있어 첩첩하고 일면은 강을 끼었으며 문을 나와 수백보쯤 이루는 산중간을 다듬어 수간의 집을 짓고 정착하게 되었으며 호(號)가 말하여 주듯 한가로움을 좋아한다는 뜻에서 식영정(息營亭)이라 이름을 짓고 영산강의 유일한 절경을 바라보면서 당시 명망이 높으신 주변의 인물들과 자리를 함께 하여 세사를 논하고 시를 읊고 여생을 보내던 중 인조임금님의 소명을 받고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주상을 모시고 남한산성을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 임무를 마치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와 식영정에서 풍류를 즐기며 생활하시다가 1648년 10월 11일 여생을 마치셨다고 전하여 오고 있습니다.

이처럼 식영정(息營亭)은 임연(林堜)께서 정치사적으로 주목(注目)할만한 인물들과 교감을 같이 하던 유적이며 영산강변의 경치가 뛰어난 명승지로 사백년 전에 식영정(息營亭)을 건립하여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으니 한번쯤 찾아볼 만한 유적이오니 가족과 함께 찾아주셨으면 합니다.

전남 무안군 몽탄면 이산리(전화 061-452-3245)

임연(林堜) 한호공(閒好公) 12대손
林 承 澤 記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