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화보)

영성각(永成閣)


10世 소윤공 휘 봉(鳳) 이하 세장산 제각
ㅡ전남 나주시 다시면 가운리ㅡ

 

영성각 뒤 신걸산이 나주임씨 세장산이며, 왼쪽에 20世 창계공(滄溪公) 임영(林泳)을 모신 창계서원(滄溪書院)과 그의 아우 매계공(梅溪公) 임정(林淨)의 영당(影堂) : 매계공의 영정(影幀)을 모신 집이 있다.

나주 임씨(林氏) 세장산(世蔣山) 제각

신걸산(信傑山)은 나주의 진산(鎭山)인 금성산(錦城山)의 줄기로 영산강을 바라보며 봉우리들이 수려하게 뻗어 있다. 이곳에는 나주 임씨의 10세 소윤공(少尹公) 휘(諱) 봉(鳳) 이하로 12세 시정공(寺正公) 휘(諱) 석주(碩柱), 13세 참의공(參議公) 휘(諱) 귀연(貴椽), 14세 참판공(參判公) 휘(諱) 평(枰), 15세 귀래정공(歸來亭公) 휘(諱) 붕(鵬), 동지공(同知公) 휘(諱) 안(鷃), 16세 장수공(長水公) 휘(諱) 익(益), 정자공(正字公) 휘(諱) 복(復), 절도공(節度公) 휘(諱) 진(晉), 첨지공(僉知公) 휘(諱) 몽(蒙), 17세 감역공(監役公) 휘(諱) 개(愷), 석촌공(石村公) 휘(諱) 서(㥠), 백호공(白湖公) 휘(諱) 제(悌) 등의 산소가 모셔져 있어 이 산을 관리하고 묘제를 지낼 때 이용하기 위해 이 제각을 세운 것이다. 신걸산의 제각은 원래 영사재(永思齋)란 이름으로 신걸산 속의 군장동(軍蔣洞)에 있었다. 이 제각은 인가에서 멀리 떨어져 불편하다 하여 현 위치로 옮겼던 바 1907년의 일이다.

이 곳은 창계서원(滄溪書院)의 옛 터인데 당시는 서원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었던 때문이었다. 현재 건물은 1963년에 중수한 것이다. 규모는 기와로 이은 팔작지붕 6가(架) 5간(間)으로 동서(東西) 2방(房)에 대청이 있으며, 따로 솟을 대문을 설치했다. 영성각의 후면으로 창계서원의 신실(神室)이 복원되어 있고 측면으로는 매계공(梅溪公) 영당(影堂)이 서 있다.

ㅡ 서기 2001년 1월
 
 
 
 

영성각 제실 제사 모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