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화보)


영수재(永綏齋)

9世 감무공 휘 탁(卓) 제각
ㅡ전남 나주시 문평면 옥당리 산 26번지ㅡ


 




 

 

 

 나주임씨 감무공 임탁의 산소와 제각


감무공 임탁(林卓)은 나주 임씨의 원조(遠祖) 대장군공(大將軍公) 휘(諱) 비(庇)로부터 9세(世)로 고려말 조선 초 사이의 인물이다. 공은 고려조에서 봉순대부(奉順大夫) 해남(海南) 감무(監務)로 재임중 나라가 망함에 충절의 뜻을 품어 벼슬을 버리고 성향(姓鄕)으로 돌아왔다. 이에 공은 두문동(杜門동) 72현(賢)의 한 분으로 일컬음을 받게 된 것이다.

공이 낙향한 이후로부터 자손들이 이 고장에서 세거(世居)하게 된 바 이 묘는 나주 임씨의 현존하는 가장 윗대의 산소이다. 이곳 지명이 임을산(林乙山:속칭이불뫼)이어서, 이 산소를 세상에서 "이불 명당"이라 이야기되고 있다. 그 자손들 가운데 훌륭한 인재가 많이 배출되었기 때문에 생겨난 전설이다.
또한 묘역에는 석순(石筍)이 서 있는데 자손이 죽순 나듯이 번창한다는 뜻으로 구전되고 있어 상서로운 돌로 여겨지고 있다. 묘 앞에 상석과 비석은 예전 부터 있는 것이 마모되어 1995년도에 새로이 세우고 옛것은 그대로 보존하였다. 묘역 입구에 따로 이 산소의 사적을 기록한 큰 비석이 서 있다.

영수재는 이 산소를 수호하고 묘사를 지낼 때 이용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영조 18년(1742) 창건이 되었는데 세월이 흐르는 동안 누차 보수를 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957년에 재건축한 것으로 원위치에서 30보 아래로 옮겨졌다. 건물의 규모는 기와를 이은 팔작기붕의 6가(架)5간(間)으로 동서(東西) 2방(房)에 중간은 대청이다. 목재는 부안의 변산(邊山), 석재는 익산의 황등석(黃登石)을 사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