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화보)

도선묘 사적비(都先墓 事蹟碑)

ㅡ전남 나주시 문평면 옥당리ㅡ

9世 감무공(금은공) 휘 탁 묘소  앞
 


9世 휘(諱) 탁(卓). 관(官) 감무공(監務公). 호(號) 금은(錦隱)

羅州林氏 林乙山 先墓 事蹟碑文
(나주임씨 임을산 선묘 사적비문)


임을산은 곧 금산 또 '이불뫼'라고도 칭하는바 나주 서쪽 이십리에 자리한 호남의 명지요, 우리 선조 고려遺臣 해남감무 나주 임공휘 탁(卓)의 묘가 임좌(壬座)의 언덕에 있다.
비록 청절한 계학이나 가려한 수석은 없을지라도 산세의 장중함과 지리의 오묘함은 남주의 으뜸으로 청룡백호의 맥락이 완연하고 조망이 광활하니 천추분필의 복지요 만세불파의 영역이다. 그 계하의 공의 손 산원공 휘 시소, 증손 시정공 휘 석주의 배 해미곽씨의 묘가 있다. 고려대장군 충청도도지휘사 휘 비를 원조로 하고 직장 휘 영발, 이부상서 휘 양간, 호군 휘 박, 중랑장 휘 영문, 별장 휘 돈세, 판도판서 휘 수, 호군 휘 선이 뒤를 이어 공에 이르고 있으나 묘소는 모두 실전하니 이 임을산 감무공의 묘는 실로 우리 나주임씨의 도선묘이다. 공이 여말 혁세의 때에 불사이군의 대의를 지켜 관을 버리고 나주 회진으로 은둔하니 세칭 두문동칠십이현중 일인이요, 이로 인하여 자손이 세거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아래 수세대는 공의 유지를 받들어 향려에 은거하여 당세의 명리를 멀리하고 세가의 풍교만을 유지하더니 공의 육세손 귀래정 휘 붕에 이르러 가운이 대창하여 子孫이 크게 번성하고 현달하게 되었다.
충효문장이 계계승승하니 문과에 오른이만도 오십 여인에 혹은 판서상신으로 혹은 청환화직으로 발탁되어 공업과 영명을 남기었고 또한 방백수령으로 팔도삼백여주에 선정의 치적을 기록한 바 귀래정의 지절 백호의 문학 석촌청구의 경륜 동리창계노촌의 학문은 더욱 두드러진 위적이라 그 사실은 우리의 역사에 소소한 바 있다.
자래로 우리 가문이 청고근졸한 기풍을 세수하여 왔다. 청고하므로 빈비하고 구차한 태도가 없었고 근졸하므로 참람하고 과분한 행동이 없었으니 밖으로 는 청렴강직한 기품으로 조야의 추앙을 받았고 안으로는 돈목과 덕행으로 향당의 긍식한바 되어 명가의 모범이 되고 동방명족의 칭을 받으니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준 고귀한 유훈이며 후손들이 대대로 계승하고 고수하여야 할 훌륭한 전통이 아닐 수 없다.
아아 공이 남귀하신지 이미 육백년 변난의 세고 어찌 한두번이었으리오마는 이 임을산의 향화 끊긴 바 없었고 공이 정거하신 회진의 고택은 직계 직손의 혈통으로 종사를 이어온지 이십사세에 지금도 고가의 풍이 그윽하다. 공의 운잉이 더욱 창성하여 이제 그 수 누십만을 헤아리게 되었으니 우리 후손된 자 이 거룩한 유업을 이어받아 긍지로 간직하기에 앞서 먼저 수성의 책무를 각성하고 더욱 분발하여 선대적덕의 음휴에 보답하고 후손에 교시하여 이 빛난 가풍의 무궁한 창달을 도모하여야 할 것이다.
이 뜻을 밝히고 추모의 성을 새롭게 하고자 우리 후손들은 뜻을 모아 이 돌을 묘정에 세우노니 임을산의 영봉에 서기 가득하고 회진의 고풍 또한 영원하리라.


二十一세손 영순 근식(謹識)
안동 김창현 근서(謹書)
서기一九八二年 壬戌 十月 일수(日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