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묘우문(藏廟宇文)
(家廟에 보관하는 글; 자손들에게 남기는 遺訓)

  
우리 임씨는 고려때부터 일어났는데 대대로 큰 벼슬을 하였다. 시조로부터 소윤공(少尹公)에 이르기까지 10대(代) 사이에 집안이 빛나고 혁혁하였다. 불행스럽게 산원공(散員公)에 이르러 아래로 3대가 높은 벼슬로 이름을 날리지 못하고 겨우 세가(世家)의 풍교(風敎)만 유지해 올 뿐이었다.
우리 참판공(參判公)에 와서는 나이 13,4세에 연달아 부모의 상(喪)을 당하여 사람들이 모두 임씨 가문이 쇠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공은 천성이 지효(至孝)하고 강개한 마음으로 뜻을 세워 장사지내고 제사지내는 예(禮)을 잘해냈고 집을 이루고 가묘(家廟)를 세워 온전하게 번성하던 집안과 같도록 하였다.

어른이 되어 활쏘고 말타는 일에 종사하여 전쟁터에서 임금을 호위하였고 마침내 3품의 벼슬에 올랐다. 이 때만 해도 앞으로 크게 발탁될 수 있는 기세였는데 공은 스스로 영화롭게 생각하지 않고 한숨을 내쉬며 탄식하기를 "어려서 부모를 잃고 외로운 고생으로 이룩했으니 문업(門業)을 떨어트리지 않고 자손에게 음직(蔭職)이라도 얻을 수 있게 되었으니 나의 일로서는 충분하다"라고 하고는 집으로 돌아왔으니 그때 나이 47세였다.
집에 돌아와서는 가묘를 중수하고 초하루와 보름날의 제사와 사시(四時)의 제사에 깨끗하고 정성스럽게 제사지내는 일에 힘쓰고 또 사계절(四季節)의 의복을 지어 가묘에 제사지내었으니 그 성심과 효성이 얼마 나 지극하시었는가!  이러므로 해서 임씨 조선(祖先)의 가업이 완전히 새로워졌고 흠결이 없었다.
'조종(祖宗)의 공을 빛내고 가업을 후예들에게 내려준다.'라고 하는 말은 바로 이러한 것이니 어찌 모두 선조 공경하는 예를 다하여 우리 조상(祖上)의 사업을 빛나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분의 자손들은 계속해서 공경해야 함이 옳다.
붕(鵬)은 써서 유교(遺敎)로 삼아 가묘에 보관해 두니 자자손손은 더럽히거나 분실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혹시 이 가르침을 준수하지 않는 자가 뒷날에 나오면 현육(顯戮) 음주(陰誅)로 그 죄를 면할 수 없으리라.

가정(嘉靖) 32년 계축(1553)년 봄에
통정대부 광주목사(光州牧使) 붕(鵬)이 씀.

-원문(原文)-
 
惟我林氏起自麗朝世襲簪笏自始祖至于少尹公十代間門闌煥赫不幸至散員公以下三代未得顯揚僅存世家風敎而已逮我叅判公年十三四而連遭兩憂人皆謂林氏之門衰矣然公天性至孝慷慨有立志克修送終追遠之禮成家立廟有同全盛之門而及長業弓馬侍陛楯間竟爲三品之職時將有顯拔之勢矣公不自以爲榮乃喟然嘆曰早失父母孤苦成立不墜門業得爲蔭及子孫之職於吾足矣乃歸于家年四十七矣迺重修家廟朔望之奠四仲之祭務存潔誠且造四節衣服祭於廟而焚之其誠孝極矣於是乎我林氏祖先之業一新無欠焉所謂功光祖宗業垂後裔者正在於此盍擧追尊敬先之禮乎當爲永世不遷之主以顯我先君之事業乎其爾子孫勿替敬之可也鵬書爲遺敎藏于廟庭子子孫孫勿汚勿失倘有不遵是敎者出於後世則顯戮陰誅不得辭其罪矣.
時嘉靖三十二年癸丑春通政大夫行光州牧使 鵬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