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임씨(羅州林氏) 대종가(금은당 : 錦隱堂)의 유래

   

나주임씨 세거지 회진(會津)은 마한, 백제 시절의 유적을 간직한 유서 깊은 옛 고장으로 신라 경덕왕 때 회진현이었으며, 고려때까지 나주에 속한 고을로 있었다. 조선조에 나주로 합쳐져서 회진은 마을 이름으로만 남게 되었다. 이 회진에는 임씨가 고려말 이래 대대로 살아, 회진임씨로 불리다가 지금은 나주임씨로 일컫게 된 것이다.

나주임씨는 원조(遠祖) 휘(諱) 비(庇)에서 9세(世)를 내려와 감무공(監務公) 휘(諱) 탁(卓)부터 비로소 사적이 전하는 바로 나주임씨는 원조 휘 비(庇)의 9세손인 감무공 휘 탁(卓)이 1392년,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던 해에 회진에 터를 잡은 이래 현재의 종손(임정렬)에 이르기까지 24대 625년 동안 이 터에서 종통(宗統)을 유지하며 한 대(代)도 양자를 들인 사실이 없이 장자 장손으로만 대를 이어왔던 것으로 세인의 칭송을 받고 있다. 종손이 본관지에 아직 거주하고 있어 전통과 가문의 긍지를 드높이고 있다.

건물은 모두 목조에 기와 지붕으로 정침(正寢), 사랑채, 대문 및 부속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전라도 사대부 가옥의 일반 형태다. 이 가옥은 신걸산(信傑山)을 등에 지고 영산강을 바라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형인 누저동(樓底洞)에 자리잡고 있다. 풍수설에 의하면 갈마음수(渴馬飮水 :목마른 말이 물을 마심)의 형국으로 난훈계복 (蘭薰桂馥 :가문이 번영하고 자손이 훌륭함)의 명당이라 한다.
 

나주임씨는 이 대종가에서 자손이 전국으로 퍼졌다. 특히 15세에 이르러 귀래정공 휘 붕(鵬)이 태어나 문호를 크게 일으켜서 명문거족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 뒤 청고근졸(淸高謹拙 : 심지는 청백하고 고상하게 하며, 처신은 삼가고 겸손하게 하라)의 세전 종훈(宗訓)을 바탕삼아 높은 벼슬과 학덕 높은 선조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또한 대대로 청백리가 많았고 역신과 탐관오리가 없는 전통을 이어오는 것을 나주임씨 가문의 긍지로 삼고 있다.

나주임씨의 파명록에 따르면 원래 장수공파, 정자공파, 절도공파, 첨지공파, 도정공파, 진사공파, 생원공파, 동지공파 등으로 분류되었으나 후에 금수공파, 가의공파 등 10개 파로 나뉘고 있다.

한편 본향인 회진(나주시 다시면 회진리)에 나주임씨 대종가(금은당:錦隱堂)가 이어지고 있다. 종손(임정렬)이 본관지에 아직 거주하고 있어 전통과 가문의 긍지를 드높이고 있다.  


▲대종가 입구 표지석 

 

 ▲대종가 전경 


▲대종가 입구


▲대종가와 부조묘 사당
전남 나주시 다시면 회진길 28-8
(나주시 다시면 회진리 242번지)

▲대종가 안채 '금은당(錦隱堂)'


▲대종가 안채 금은당 편액


 ▲대종가 사랑채 '금리헌(錦里軒)'


▲대종가 사랑채 '금리헌(錦里軒)'  편액 

 ▲대종가의 설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