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임씨 가문의 유래(由來)

 

고려의 충렬왕이 아직 세자로 있을 때 원(元)나라와 화의(和議)를 위해 갈 때 호종하고 갔다가 돌아오고 있을 때였다. 임연(林衍) 등이 원종(元宗)을 폐하고 그의 동생 안경공(安慶公) 창(淐)을 왕으로 옹립하였다.
이를 알게 된 세자 일행은 원으로 돌아가 원 황제 세조(世祖)의 힘으로 원종이 복위되고, 귀국하여 세자는 1274년 고려 제25대 충렬왕이 되었다.
원과 화의할 무렵 혼란기와 무인(武人)의 오랜 세도를 종식시키고 왕권을 회복하는데 끝 까지 충렬왕을 시종보좌(侍從輔佐)한 대장군 임 비(林庇)공은 그 공로로 1281년 2등공신이 추록되어 토지와 하인, 철권을 하사받았다. 벼슬은 대장군 충청도 도지휘사 판사재시사(大將軍 忠淸道 都指揮使 判司宰寺事)에 오르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우리 나주임씨는 대장군 판사재시사공(大將軍 判司宰寺事公)으로 시조를 삼는데 선세(先世)에 유전해오 는 말을 들어보면 대장군공 위로도 또 여러 대(代) 높은 벼슬을 지낸분이 있었다 했는데 안타깝게도 세 대가 아주 멀고 문적을 증거할 수 없어 지금 상고해서 밝힐 수가 없다.

그러나 예로부터 전문해오는 말이 이러함으로 이제 맨 머리에 오르는 할아버지에게 곧 바로 시(始)자를 쓰는 것은 미안할 것 같아 우선 근세의 대구서씨(大丘徐氏) 족보 예규를 참고하여 "원조(遠祖)"라고 썼으며 또 성자를 써 넣어 대본(大本)의 의(義)를 보인다. - 庚申1800年(경신보 서문에서)-
임 비(林庇)공 이후 8세까지 고려에 높은 벼슬로 이어오다 고려가 망하자 고려10열 이시며 두문동(杜門洞) 칠십이현(七十二賢) 가운데 한분이신 9세 감무공(監務公) 휘(諱) 탁(卓)께서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를 굳게 지키시고 동지들과 함께 괘관현(掛冠峴)에 올라 뜻을 밝히시며 관복을 걸고 부조현(不朝峴)을 넘어 두문동(杜門洞)으로 들어가셨다. 그후 태조대왕(太祖大王)의 여러번에 걸친 소명(召命)이 있었으나 응하지 않으시고 드디어 회진(會津) 성향(姓鄕)으로 낙남(落南)하시어 1392년 회진(會津=현 나주시 다시면 회진)에 은둔하시고 종신(終身)토록 나가시지 않으셨다. 이로부터 자손들이 세거(世居)하게 되어 본관(本貫)을 "회진(會津)"으로 하였고 이후 6백여년간 양자(養子) 없이 종통(宗統)을 이어오며 많은 인재를 배출한 것으로 세인의 칭송을 받고 있다.